과학 혁명의 구조
머릿말
우연히 어떤 각주를 읽고나서 자라나는 어린이가 세계를 경험하고 한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옮겨가는 과정에 관하여 장 피아제가 밝힌 실험들에 관심이 끌렸던 적이 있다. 나의 동료 중 한 사람은 인지심리학, 특히 게슈탈트 심리학의 논문을 소개하였으며, 다른 사람은 언어와 세계관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벤자민 워프의 설(사피어-워프 가설)을 소개했고 콰인은 분석과 종합의 구분에 대한 철학적 문제를 내게 제기하였다. …
버클리 대학의 파울 파이어아벤트, 컬럼비아 대학교의 어니스트 네이글, 로렌스 방사능 연구소의 피에르 노예스, 그리고 출판될 최종 원고를 정리하는데 함께 도와준 제자 존 헤일브론이다. 그들의 이견이나 제안들은 대단히 유익한 것이었지만, 위에 언급한 사람들이 이 원고 내용을 전적으로 승인해 주리라고 믿을 수는 없다(오히려 그 반대의 이유는 있다). —pxii-xix
1장. 서론: 역사의 역할
이 책의 목적
역사를 일화나 연대기 이상의 것을 포함하는 보고로 본다면 그 역사는 현재 우리가 가진 과학상에 결정적인 전환을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이다. 과학자 자신들도 이제까지 그러한 상을 주로 완성된 과학적 성과로부터 도출해 왔으며, 이들 과학적 성과는 고전 안에 그리고 최근에는 다음 세대의 과학자들이 배우는 교과서 안에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 책들은 설득과 교육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거기에서 유도된 과학의 개념은 관광 안내서나 외국어 교과서에서 도출되는 민족 문화의 상과 다를 바 없다. 나는 우리가 그동안 그러한 책들에 의해 근본적으로 오도되어 왔음을 보여주려고 한다. 이 책의 목적은 연구 활동 자체에 관한 역사적 기록에 근거하여 전혀 새로운 과학의 개념을 찾는 데 있다. —p1
기존 과학사가들이 당면한 문제점.
최근 몇몇 과학사가들은 누적에 의한 발달이라는 개념이 그들에게 부과된 기능을 점점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히고 있다. … 동시에, 이들 과학사가들은 과거의 관찰과 믿음의 ‘과학적’ 요소를 그 이전에 ‘오류’ 또는 ‘미신’이라고 규정한 것들과 구분하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 만약 이러한 낡은 생각들을 신화라고 부른다면 이런 신화는 오늘날의 과학 지식이 형성되는 방법과 같은 방법으로 만들어질 수도 있고 또한 동일한 이유로 주장될 수도 있다. 반면에, 만약 그러한 생각들을 과학이라고 부른다면 과학은 오늘날 우리가 갖고 있는 과학과는 상당히 다른 신념들을 포함해 온 것이다. 이런 대안이 주어졌을 때 역사가는 후자를 택해야 할 것이다. 낡은 이론들이 버려졌다고 해서 근원적으로 비과학적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후자를 선택하는 경우에 과학의 발달을 누적과정이라고 보기는 힘들게 된다. —p2,3
관찰과 경험만이 특정한 과학적 신념을 결정할 수는 없다.
관찰과 경험은 수용 가능한 과학적 신념의 범위를 철저하게 한정할 수 있고 한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과학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관찰과 경험만이 특정한 과학적 신념을 결정할 수는 없다. 개인적이고 역사적인 우연 등 자의적인 요소로 보이는 것들도 항상 그 시대의 과학자 집단이 지니는 신념을 구성한다. —p4,5
정상 과학에서의 연구:
정상 과학을 고찰할 때 우리는 연구라는 것을 전문 교육에 의해 형성된 개념의 상자 속에 자연을 강제로 쑤셔 넣으려는 끈질긴 노력으로 기술하려고 한다. —p5
2장. 정상 과학의 모색
교과서가 없을때 교과서 역할을 했던 책들.
교과서들은 일련의 정설을 설명하고 성공적인 응용 사례를 들어 해설하며 적용 사례와 관찰/실험의 보기들을 비교한다. 19세기 초 이러한 책들이 유행하게 되기 이전에는 과학의 유명한 과학고전 서적들이 비슷한 기능을 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Physica, 프톨레마이오스의 Almagest, 아이작 뉴튼의 Principia와 Opticks, 벤자민 프랭클린의 Electricity, 앙투안 라부아지에의 Chemistry, 찰스 라이엘의 Principles of geology와 같은 많은 책들이 한동한 과학자들의 연구 분야에서 정당한 문제와 방법론을 정의해주는 역할을 하였다. —p10
고전, 교과서의 공통점. 이러한 특성을 지니는 업적을 패러다임이라고 한다.
우선 그들의 업적은 경쟁적인 과학 연구 방식을 멀리하는 추종자 집단을 계속 유인할 만큼 전례없이 탁월한 업적이었다. 동시에 그 업적은 새로이 형성된 연구자들에게 여러가지 문제들을 제시할 수 있을만큼 개방적인 것이었다.
이 두 가지 특성을 지니는 업적들을 앞으로 패러다임이라고 부를 것이며, 이 용어는 정상 과학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패러다임은 학계에서 인정받은 실제 과학 연구의 사례들 - 법칙, 이론, 적용, 도구화 등 - 을 포함하여 이 모형을 제공함으로써 과학 연구의 특정한 일관성 있는 전통을 발생하게 한다는 특성을 제시하려는 의도에서 선택된 용어이다. —p10-11
과학의 발전 초기 단계에 많은 학파가 나오게 되는 상황:
선택, 평가, 비판을 가능케 하는 이론과 방법론적 신념에 관한 최소한의 암시적인 체계를 갖추지 않고서는 어떤 자연지도 해석될 수가 없다. 이런 신념의 체계가 자료 수집 중에 미리 암시되지 않는다면 그러한 신념은 당시의 형이상학이나 다른 과학, 또는 개인적인 그리고 역사적인 우연에 의해 외부로부터 주어져야 한다. 그렇다면 어느 과학이나 그 초기 발전 단계에서 동일한 현상이 아니더라도 같은 범주에 속하는 현상을 대상으로 삼은 사람들이 서로 다른 서술과 해석을 했다는 것은 당연한 노릇이다. —p17,18
[!memo] 종의 기원 4장의 다이어그램과 유사한 면이 있어 보인다. —AK, 2003
새로운 패러다임이 밝혀진 모든 사실을 설명해야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의 이론이 패러다임으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다른 경쟁 이론보다 우월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그것이 모든 사실을 설명해야 하는 법도 없고 그렇지도 못한 것이 사실이다. —p18,19
패러다임을 수용한 이후의 변화
개별 과학자가 하나의 패러다임을 일단 받아들이면 그의 분야를 새로 설정하기 위해 기초 원칙으로부터 시작하여 그가 사용하는 개념을 정당화하는 등의 노력을 더 이상 할 필요가 없다. 이 작업은 교과서 집필자에게 넘겨질 수 있다. —p21
옛날 과학자들의 연구가 지금 패러다임과 맞지 않는다고 하여 그게 과학이 아니었던 것은 아니다.
사후적 지혜에 의존하는 유리함을 제외하고는 하나의 분야를 과학이라고 명확히 천명할 다른 기준을 찾기는 어렵다. —p23
3장. 정상 과학의 성격
패러다임을 받아들인 후 정상 과학의 연구 성격, 그들이 해결해야할 문제의 종류 등을 분석한다.
정상 과학은 새로운 종류의 현상을 추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으며, (패러다임이 제시하는) 그 상자에 맞지 않을 현상은 전혀 보지 않는 경우도 있다. 흔히 과학자들은 새로운 이론을 발명하려고 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들이 발명한 이론에 대해서도 관대하지 않을 때가 많다. 그보다 정상 과학 연구는 패러다임이 이미 제공한 현상이나 이론을 명확히 하는 데에 치중한다. —p25
이상의 세 가지 문제들은 - 중요한 사실의 결정, 사실과 이론의 조화, 이론의 명료화 - 경험적, 이론적 측면에서의 정상 과학 문헌에 나타난 것의 전부이다. 물론 이것이 과학 연구 전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비정상적인 문제들도 많이 있고, 그런 문제 해결이 과학 전체를 가치있는 것으로 만들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비정상적인 문제들은 구한다고 쉽게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정상적 연구의 발전에 따라 나타나는 특수한 경우에만 생긴다. 그러므로 우수한 과학자들이 다루는 대부분의 문제들이 위에 열거한 세 가지 종류 중 하나에 속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p36
4장. 퍼즐 풀이로서의 정상 과학
결과 자체가 흥미롭거나 중요하다는 것은 퍼즐에 대한 우열을 가르는 기준이 되지는 않는다. … 두 개의 다른 퍼즐 상자에서 임의적으로 조각들을 뽑아 내 조각 그림 맞추기를 한다고 생각해 보자. 이 문제는 아무리 독창력 있는 사람이라도 좌절될 것이므로 그것은 해결의 기술을 시험하는 것이 될 수가 없다. 상식적으로, 이것은 전혀 퍼즐이 아닌 것이다. 내재적인 가치가 퍼즐의 기준이 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해결책이 확실히 존재한다는 사실은 그 기준이 된다. —p39
어느 문제가 퍼즐로 간주되려면 그 문제의 해결이 확실시되는 것 이상의 특성을 지녀야 한다. 정답의 성격과 그러한 해답이 얻어지는 단계를 제약하는 일정한 규칙이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조각 그림 맞추기를 푸는 것은 단순히 ‘하나의 그림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어린 아이나 현대 미술가가 몇 조각을 골라 펼쳐 놓고 추상적인 그림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그림이 퍼즐을 다 맞춘 것보다 더 좋은 그림이 되고 더욱 독창적인 것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것은 정답은 아니다. 퍼즐 해결을 위해서는 모든 조각들을 다 사용해야 하며, 평면 부분을 사면에 놓고 그 안에 빈 곳이 없이 조각들을 잘 맞추어야 한다. 이런 규칙들이 조각 그림 맞추기를 해결하는 데 적용되는 규칙들이다. —p41
5장. 패러다임의 우선성
패러다임은 발견 가능한 규칙이 없이도 정상 과학을 규정할 수 있다.
표준적인 해석이나 또는 규칙으로의 환원에 관한 동의가 없어도 패러다임 연구를 교도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정상 과학은 패러다임을 직접 검토함으로써 어느 저오 규정될 수 있으며, 이 때 규칙이나 가정이 도움은 되지만 반드시 그것들에 의존하지는 않아도 된다. 패러다임의 존재는 어떤 일련의 규칙이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p47
과학자 집단에게 특정한 하나의 패러다임이 존재할 수 있으나 그것이 집단 구성원 모두에게 동질의 패러다임이 되지는 않는다.
전문화의 효과에 관한 간단한 보기는 이제까지의 설명을 보충해 줄 것이다. 과학자들이 원자론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가를 알고자 하는 사람이 유명한 물리학자와 화학자에게 헬륨 원자가 분자인지 아닌지를 질문하였다. 둘은 다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는데 그들의 답은 서로 같지 않았다. 화학자에게 헬륨 원자는 기체의 운동 법칙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에 분자였다. 물리학자에게는 헬륨 원자가 분자 스펙트럼을 보이지 않기 때문에 분자가 아니었다. 두 사람이 다 동일한 입자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지만 그들은 각기 자신의 연구와 관행을 통해 그것을 보았다. —p54
6장. 변칙성과 과학적 발견의 출현
정상 과학은 새로운 것을 발견함을 목적으로 하지 않으며, 새로운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한다.
퍼즐 풀이 활동으로서의 정상 과학은 과학 지식의 범주와 정확성의 점진적인 증대라는 목적을 성공적으로 달성하는 고도로 누적적인 사업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정상 과학은 과학에 관한 통상적인 이미지에 정확하게 일치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과학의 표준적인 산물 하나가 결여되어 있다. 정상 과학은 사실이나 이론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함을 목적으로 하지 않으며, 성공적일 경우에도 새로운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다. —p55
발견자와 발견 순간을 정확히 설정하는 것의 문제점
셸레의 예를 제외하면, 1774년 이전에 산소가 발견된 때는 1777년 이전 또는 바로 그 직후일 것이라는 이야기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와 비슷한 기간 내에서 발견의 시간을 결정하려는 노력은 무리일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새로운 종류의 현상을 발견한다는 것은, 어떤 것이 존재한다는 것과 그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두 밝혀야 하는 복잡한 일이기 때문이다. —p59
Trick card experiment 인용:
심리학 외의 전문 분야에도 널리 알려져야 할 심리학 실험 중에는 제롬 브루너와 레오 포스트맨의 실험이 있다. 그들은 피실험자에게 트럼프 카드를 잠깐 보여주고 답을 하도록 했다. 대부분의 카드는 보통 카드였지만 적색 스페이드 6과 흑색 하트 4 등 몇 개는 변칙적으로 제작된 것이었다. 실험의 각 단계에서 한 대상자에게 카드 한 장만을 보여주고 점차 횟수를 늘려 주었다. 매번 대상자는 무엇을 보았는지를 대답하였고, 정확한 답을 두 번 계속하면 그 단계는 끝났다. … 보통 카드의 경우 해답은 대체로 정확하였으나, 변칙적인 카드의 경우에는 대부분이 약간 주저한 후 보통 카드인 것처럼 대답하였다. … 그들은 조금도 이상한 것을 알아채지 못하고 그들의 경험에서 준비된 개념 카테고리에 즉각적으로 맞추어 답을 한 것이다. … 변칙적인 카드를 좀 더 많이 보여주면 피실험자들은 주저하든가 혹은 어떤 변칙성을 인식하는 것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예를들어 적색 스페이드 6을 보여 주었을 때 “그것은 스페이드 6이지만 좀 이상하다. 흑색에 붉은 둘레가 있다”라는 식으로 답했다. 더욱 횟수를 늘려주었을 때는 더욱 주저하고 혼돈을 하게 되었고, 마침내 어떤 순간에는 갑자기, 대부분의 대상자들은 주저하지 않고 정확한 답을 주었다. —p67
패러다임을 통한 전문화, 그리고 전문화로 인한 경직.
어떤 과학이든 최초의 패러다임이 인정되면 그 분야 종사자들은 쉽게 접근 가능한 관찰과 실험의 대부분을 대단히 성공적으로 해낼 수 있는 것처럼 느낀다. 그리하여 더 발전하면 정교한 실험 장치를 제작하고, 난해한 용어와 기술을 발전시키며, 상식과의 유사점을 줄이는 개념을 정리할 필요가 생기게 된다. 그러한 전문화는 한편으로는 과학자의 시야를 대단히 제약하며 그리하여 패러다임 변화에도 상당한 저항을 하게 한다. 그 과학은 점차로 경직된다. —p68,69
변칙성을 발견하도록 도와주는 것 또한 패러다임이다.
변칙성은 패러다임에 의해 제공된 배경에서만 일어난다. 그 패러다임이 좀더 정확하고 영향력 있는 것일수록 변칙성도 더욱 예민하게 나타나며, 따라서 패러다임 변화의 가능성도 커진다. 정상적인 발견에서는 패러다임 변화에 대한 저항까지도 이로운 경우가 있다. … 패러다임이 그렇게 쉽사리 투항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함으로써 과학자들은 쉽게 동요되지 않으며, 저항은 패러다임 변화로 이끄는 변칙성이 기존 지식의 핵심부까지 꿰뚫을 수 있도록 보장한다. —p69
7장. 위기와 과학 이론의 출현
위기는 “과학의 도구(제조업에서의 도구와 같은)“를 개조하기 위한 신호.
과학철학자들은 수집된 자료에 대하여 둘 이상의 이론이 성립할 수 있다는 사실을 되풀이해 보여주었다. 특히 새로운 패러다임의 초기 발전 단계에서 그러한 이론들을 발명해 내는 것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점을 과학사는 지적한다. 그러나 이러한 대안적 이론들의 고안은 과학자들이 언제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다만 과학 발전의 패러다임 이전 단계와 그후의 진전 과정 중 대단히 특수한 경우에만 그렇다. 하나의 패러다임이 제공하는 장치가 그 패러다임에 의해 설정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증명되는 한, 과학은 빠른 속도로 움직이며, 그 장치를 자신있게 사용함으로써 깊은 부분까지 꿰뚫게 된다. 그 이유는 명료하다. 제조업에서와 마찬가지로 과학에서도 도구의 개조는 낭비로 여겨지며 반드시 요구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보류된다. 위기의 의미는 그러한 도구 개조의 시기가 왔음을 알리는 신호를 제공하는 데에 있다. —p81
8장. 위기에의 반응
변칙성이 발견되어도 이를 반증례로 취급하지 않는다.
그들은 과거의 패러다임을 불신하고 대안을 생각하기 시작하지만 자신들을 위기에 처하게 한 패러다임을 공식적으로 포기하지는 않는다. 즉 그들은 변칙성을 과학 철학 용어로 ‘반증례’로 취급하지는 않는다. —p82
패러다임의 거부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수용으로 이어진다.
하나의 패러다임을 거부하는 결정은 항상 다른 패러다임을 수용하는 결정이기도 하며, 그 결정에 이르는 판단은 두 개의 패러다임을 자연현상에 비교하고 또한 그 두 패러다임을 서로 비교하는 작업을 포함한다. —p83
패러다임의 포기
과학을 거부하고 다른 직업을 찾는 일이란 반증례 자체가 가져올 수 있는 패러다임 포기의 유일한 형태라고 생각한다. 자연을 관찰할 첫번째 패러다임이 일단 발견되면 어떤 패러다임도 존재하지 않는 연구란 결코 성립될 수가 없다. 그와 동시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수용하지 않고 기존의 패러다임을 버리는 일은 과학 그 자체를 포기하는 것이다. 그 행위가 패러다임에 반영되지 않고 인간에게 나타나는 것이다. 필연적으로 그는 그의 동료들로부터 ‘자신의 연장을 탓하는 목수’로 보일 것이다. —p84
새로운 패러다임의 기초는 젊거나 새로 연구를 시작하는 사람들로부터 나온다.
거의 언제나 새로운 패러다임의 기초가 될 발명을 하는 사람들은 아주 젊거나 변화될 패러다임의 분야에 새로 들어온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아마도 이 점은 명백히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분명히 이들은 정상 과학의 전통적 규칙에 구애되지 않음으로 해서 그들 규칙들이 방법을 잘 정의해 주지 못하는 것을 특히 잘 볼 수 있고, 또한 그 규칙들을 대치할 수 있는 다른 규칙을 쉽게 생각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p97
[!memo] Change: How to make big things happen에서 말하는 Complex contagion 개념이 생각난다. 인플루언서(이 맥락에서는 ‘저명한 과학자’)는 먼저 움직이지 않는다. —AK, 2024-08-28
위기에의 반응
변칙성 또는 위기에 직면하여 과학자들은 기존 패러다임에 관하여 다른 태도를 갖게 되며, 따라서 연구의 성격도 변화한다. 경쟁적인 주장이 난립하고, 어느 것이라도 시도할 수 있는 준비가 되고, 불만을 표현하고, 철학에 호소하고, 근본적인 문제에 관한 논쟁을 하는 등의 모든 증상은 정상 연구에서 이상 연구로의 전이를 표시하는 징조들이다. 정상 과학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는 혁명보다는 이들 증상의 존재가 더 중요하다. —p97
9장. 과학 혁명의 본질과 필요성
정치와의 유사성
정치적 혁명은 흔히 정치적 공동체의 한 부분에 제한되긴 하지만, 부분적으로 기존 제도가 조성한 환경에 의해 제기된 문제들을 그 제도로는 적절하게 해결할 수 없게 되었음을 그 집단이 점진적으로 느끼게 됨으로써 비롯된다. 상당히 유사한 방법으로, 과학적 혁명도 역시 흔히는 일부에 한정된 과학자 집단이 현존 패러다임 그 자체가 이전에 문제시한 자연 현상의 어느 측면을 적절히 설명하는 기능을 상실하였음을 느끼게 됨으로써 시작된다. —p98
정치 혁명은 현존 제도 자체가 금하는 방법으로 정치적 제도를 변화시키려는 데 목적이 있다. 그러므로 혁명의 성공은 반드시 현 제도의 일부를 철회하고 다른 제도로 바꾸며, 그 중간에는 사회가 어떠한 제도에 의해서도 완전히 통제되지 않는다. 처음에는 단지 위기 그 자체가 패러당미을 약화시키는 것과 같이 정치 제도의 역할을 약화 시킨다. 점차로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정치 생활로부터 소원하게 되고 이상한 행동을 하게 된다. 그리고나서 위기가 심각해짐에 따라 이들은 새로운 제도적 틀 안에서 사회를 재건하는 구체적인 제안을 한다. 이 시점에서 그 사회는 한편에서는 구제도를 방어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어떤 새로운 것을 구성하려는 진영이나 당으로 분리되어 서로 경쟁한다. 그리고 일단 이렇게 양극화되면 정치적 타협은 실패하기 마련이다. 이들 혁명 투쟁에 관련된 당파들은 정치적 변화가 달성되고 평가되는 제도적 모형에 관해 견해를 달리하므로 혁명적 차이를 판정하는 초제도적 틀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결국 강제력을 수반하는 대중 설득의 기술에 호소할 수 밖에 없어진다. 혁명은 정치 제도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지만, 그러한 역할은 혁명이 부분적으로는 정치외적 또는 제도 외적 사건들에 의존한다. —p100
패러다임 간의 논쟁으로부터 혁명이 생겨나는 것은 정상 과학 범주 외부의 기준에 근거한다.
어떤 패러다임도 그것이 정의한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며, 두 개의 패러다임은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들이 같지 않기 때문에 패러다임 논쟁은 항상 다음의 의문을 내포한다. 즉 어느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다? 경쟁 관계에 있는 기준의 선택 문제와 같이 이러한 가치의 문제는 정상 과학의 범주 박에 있는 어떤 기준에 따라 답할 수밖에 없다. 패러다임간의 논쟁으로부터 혁명이 생겨나는 것은 바로 이런 외부적 기준에 근거한다. —p117
10장. 세계관의 변화로서의 혁명
패러다임이 변하면 세상도 변한다.
새로운 패러다임에 의해 과학자들은 새로운 기구를 사용하고 새로운 문제 영역을 보게 된다. … 패러다임의 변화는 과학자들로 하여금 그들이 종사하는 연구 세계를 다르게 보도록 만든다. —p118
역전 렌즈 실험:
역전 렌즈로 만든 안경을 쓴 실험 대상자는 처음에는 온 세계를 거꾸로 본다. 처음에 그의 지각 능력은 안경이 없을 때와 똑같이 기능하며 그 결과 극도의 감각 혼란 상태, 극심한 개인적 위기에 놓이게 된다. 그러나 그가 그의 새로운 세계에 적응하는 방법을 배우기 시작하면 그의 온 시계가 되돌아오며, 그것은 대체로 혼란 시기가 지난 후의 일이다. —p119 (see also Supersizing the mind and Out of our heads)
새로운 용어, 새로운 정의의 효과:
‘마마’라는 단어의 대상을 모든 사람들로부터 모든 여성에게로, 그리고나서 자기 어머니에게로 바꾸는 어린 아이는 ‘마마’가 무엇을 의미한다거나 누가 어머니인가만을 배우는 것이 아니다. 동시에 아이는 오직 한 여성만이 그에게 어떤 행동을 할 것이라는 것은 물론, 남성과 여성의 차이에 대해서 배운다. 아이의 반응, 기대, 믿음 - 그가 지각한 세계의 많은 부분 - 도 따라서 변화한다. 똑같은 이치로 태양에 대한 전통적인 명칭인 ‘혹성’을 거부한 코페르니쿠스 학파 학자들은 ‘혹성’의 의미나 태양이 무엇인가를 배운 것만은 아니다. 그들은 ‘혹성’의 의미를 바꿈으로써 태양만이 아닌 모든 천체가 이전과는 다르게 보이는 세계에서 분별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11장. 혁명의 불가시성
과학 교과서는 역사를 어느정도 왜곡한다:
과학 교과서(그리고 수많은 고전 과학사 문헌)는 과거 과학자들의 업적에 대해 언급할 때에는 교과서 내의 패러다임적 문제를 제시하고 해결하는 데 공헌했다고 보여질 수 있는 부분에 관해서만 설명한다. 부분적으로는 선택적으로 또 부분적으로는 왜곡에 의해, 과거의 과학자들이 마치 가장 최근의 혁명에 의해 과학적이라고 보여지는 과학적 이론과 방법 그리고 일련의 고정된 문제를 동일한 시준에 따라 연구를 한 것처럼 묘사된다. 그리하여 교과서와 이들이 의미하는 역사적 전통이 개개의 과학적 혁명 이후 재편되어야 한다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어진다. 그리고 다시 편성됨에 따라 과학이 누적적인 모습을 띠게 되는 것으로 보이게 된다는 사실에도 의문의 여지가 없다. —p145
역사의 재구성은 혁명을 보이지 않게 만든다.
앞의 예들은, 각기 단일한 혁명의 맥락 속에서 역사가 재구성된 단초를 보여준다. 그러한 재구성은 혁명후의 과학 교과서에 의해 정기적으로 완결된다. 그러나 그 완성에는 위에 설명한 그릇된 역사의 다층적 재구성보다 더한 것이 포함되어 있다. 이들 그릇된 역사 구성은 혁명을 눈에 보이지 않게 한다. —p147
혁명은 사실과 이론의 모든 체계를 변화시킨다. 하지만 이 역시 혁명 이후에는 감춰진다.
현대 정상 과학의 많은 퍼즐들은 가장 최근의 과학 혁명 이전까지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들 중 극소수만이 지금 있는 과학의 역사적 출발점까지 추적될 수 있을 뿐이다. 과거 세대들은 그들 자신의 문제를 그들 자신의 도구와 해결 기준을 가지고 추구해 왔다. 변한 것은 문제들뿐만이 아니다. 교과서의 패러다임이 자연에 부합시키고 있는 사실과 이론의 전체계까지도 변했다. —p148
12장. 혁명의 완결
칼 포퍼의 반증주의 비판:
그는 검증의 산물이 부정적인 경우에 기존 이론의 폐기를 요하는 오류 입증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분명히, 오류 입증에 부여된 역할은 이 책에서 변칙적인 경험들에 돌리는 역할과 매우 유사하다. 그 변칙적인 경험이라는 것은, 다시 말하면 위기를 불러일으킴으로써 새로운 이론에의 길을 마련하는 경험이다. 그렇지만 변칙적인 경험들이 오류를 입증하는 경험들과 동일시될 수는 없다. 뿐만 아니라, 나는 오류 입증이 실재하는 것인지도 의심스럽다. 되풀이 강조한 바와 같이, 어떤 이론도 당면한 퍼즐들을 모두 해결한 적이 없다. 그리고 이미 얻어진 해답들도 간혹 완전치가 못하다. 도리어, 정상 과학를 특징짓는 많은 퍼즐들을 어느 때고 규정하는 것은 바로 실재하는 자료와 이론간의 일치성이 불충분하고 불완전하다는 것이다. 일치의 실패가 이론 거부의 근거라면, 모든 이론은 언제든지 파기되어야 한다. 한편, 만일 이론과 자료간 부합의 중대한 실패만이 이론 거부를 정당화한다면 칼 포퍼류의 학자들은 ‘비개연성’의 또는 ‘오류 입증의 정도’에 관한 어떤 기준을 필요로 할 것이다. 그들은 기준 하나를 찾아내는 데에도 확률론적 검증 이론의 주창자들을 괴롭혀 왔던 것과 같은 어려움에 봉착하게 될 것이 거의 확실하다. …
칼 포퍼류의 변칙적인 경험은 현존 패러다임 후보들을 발생시키는 까닭으로 과학에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오류 입증이라는 것이 분명히 있기는 하지만, 비정상성이나 오류 입증의 사례가 단순히 나타남으로써 오류 입증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오류 입증이라는 것은 이전의 패러다임에 대한 새 패러다임의 승리로 구성되기 때문에 검증이라고 불러도 될 만한 지속적이고 분리된 과정이다. —p154
혁명 이전과 이후 과학의 Incommensurability.
저항은 과학 연구 자체의 본성이다.
전생애를 걸고 저항하는 것은 과학적 기준을 모독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 연구 자체의 본성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저항은 특히 온 생애를 정상 과학의 오랜 전통에 바쳐 연구해 온 사람들에게서 강하게 나타난다. 저항의 원천은 이전의 패러다임이 만들어주는 틀 안으로 자연을 밀어넣을 수 있다는 확신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혁명의 시기에는 그러한 확신이 바로 가끔은 실제로도 그러하듯이, 완강하고 고집이 센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그 이상의 것이기도 하다. 그같은 확신이 바로 정상 과학과 퍼즐 풀이의 과학을 가능하게 한다. —p160
그러나 논쟁이 불필요하다는 것은 아니다
저항이 불가피하고 정당하다거나, 패러다임의 변화가 증명에 의해 정당화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어떤 논쟁도 적절치 못하다거나 과학자들이 그들의 생각을 바꾸도록 설득당할 수 없다고 하는 말은 아니다. 변화가 이루어지는 데 때로는 한 세대가 걸리지만, 과학 공동체는 되풀이해서 새로운 패러다임에로 개종되어 왔다. 나아가, 이러한 전환은 과학자들이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몇몇 과학자들, 특히 나이가 많고 비교적 경험이 많은 사람들은 무한정 저항하늘 수 있지만, 대부분은 어떤 방향으로든 설득된다. —p160
13장. 혁명을 통한 진보
과학 혁명에서 잃는 것.
성숙한 과학자 집단의 성원은 조지 오웰의 1984에 나타나는 전형적인 등장 인물처럼 권력자에 의해 다시 씌어지는 역사의 희생물과도 같다. 이러한 암시는 전부가 부적절하지도 않다. 과학 혁명에는 얻는 것만큼 잃는 것도 있지만 과학자들은 이상하게도 후자에는 눈을 감는 경향이 있다. —p177